비단벌레. 김종우 제공


11월 3일 오전 10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마무리된 다음의 경주 시내는 파티가 끝난 다음 날처럼 산만하면서도 한산했다. 그런 분위기도 가을녘 경주의 정취를 줄이진 못했다. 싸늘하고 맑은 햇빛 아래로 시내 여기저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고분들이 튀어나왔다.
그 고분 사이로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정인태 연구사가 기자를 이끈 곳은 경주 쪽샘유적발굴관. 작은 체육관처럼 보이는 하얀 돔 건물은 쪽샘구역 44호 고분 발굴 현장을 그대로 둘러싼 형태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고분 릴게임추천 축조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연구자와 기술자들이 쌓아 놓은 돌과 거대한 나무 기둥이 가득했다. 정 연구사는 축조 현장 옆의 책상으로 다가가 덮은 보를 걷어내고는 책상 위의 유물을 보여줬다.
“이것이 쪽샘 44호분에서 출토된 말다래 장식입니다. 오른편에 있는 게 복원품이고요.”
말다래는 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 릴게임갓 게 말 안장 양쪽으로 늘어뜨린 장비다. 대나무에 덧댄 사각형의 붉은 비단 위로 눈물방울 모양의 금동 장식 400개가 십자를 그리며 엮여 있었다. 각각의 금동 장식 중간에는 노랑에서 초록, 초록에서 파랑으로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아름다운 광택의 보석이 덧대져 있었다. 이 보석의 주인공이 바로 비단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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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정인태 연구사가 쪽샘구역 44호 고분에서 발굴된 말다래 비단벌레 장식 유물(왼쪽)과 유물 복원품(오른쪽)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 신라 왕족의 장신구, 비단벌레
비단벌레는 그 누구든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외양을 가지 바다이야기#릴게임 고 있다. 전체적 외양은 3~4cm 길이의 평범한 딱정벌레처럼 생겼지만 딱지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속성 광택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딱지날개는 초록색 바탕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데 그 색이 보는 각도에 따라 노랑, 초록, 파랑, 남색까지 다양하게 변한다. 색소나 금속 성분의 색이 아니라 딱지날개의 미세한 표면 구조에서 비롯되는 카카오야마토 구조색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특정 파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며 다양한 색을 발한다.
비단벌레의 금속성 광택은 비단벌레가 사는 나무 높은 곳에서는 포식자를 혼란하게 만드는 보호색이지만,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귀금속처럼 보인다. 그 점은 1600년 전 신라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신라는 삼국 중 말을 꾸미는 데 가장 진심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고급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것처럼 신라인들한테는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마구 중에서도 가장 크고 눈에 잘 보이는 말다래는 탑승자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었던 겁니다.”



쪽샘 44호분에 묻힌 10살 소녀의 상상도. 말 탑승자에게 흙이 튀지 않게 막아주는 말다래 장식이 보인다. 아래는 비단벌레 말다래 복원품의 확대 사진. 물방울 무늬 장식 하나에 비단벌레 한 마리의 딱지날개가 쓰였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비단벌레 껍데기는 신라인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왕족과 귀족이 사용한 장식이었다. 쪽샘 44호분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2014년부터 10년간 진행된 발굴 조사 결과 44호분의 주인은 약 10살 정도 되는 어린 여성으로 드러났다. 무덤에서는 6명의 순장자를 포함해 다양한 부장품이 발견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유물이 말다래였다.
“말다래 금동 장식 하나에 한 마리의 비단벌레 딱지날개가 들어갔어요. 말다래 한 쌍에 400마리의 비단벌레가 들어갔단 얘기죠.” 정 연구사가 설명했다.
비단벌레는 매우 높은 나무 위에서 산다. 신라인들은 비단벌레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높은 나무를 오르거나 죽어 땅에 떨어진 비단벌레를 주웠을 것이다. 그렇게 구한 비단벌레의 딱지날개를 떼어내 하나씩 장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장식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서렸을지 감히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려한 말다래에 발을 올린 10살 공주님이 서라벌을 행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말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다른 장신구들과 함께 짤랑거리는 소리를 냄녀 말다래의 비단벌레 장식이 흔들리며 반짝였을 것이다. 
“비단벌레 장식은 5~6세기 통일 전의 신라 시대 유물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쪽샘 44호분 이외에도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말안장 뒷가리개와 최근 출토된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에서도 발견됐죠.”
오후 2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난 김현희 학예연구과장이 설명했다. 비단벌레 장식 유물은 주로 말안장가리개나 등자 등의 마구류와 금동 허리띠 등에서 발견된다. 공통적으로 금동 장식에 비단벌레 껍데기를 덧댔다. 금의 따뜻한 노란색 프레임 사이로 매치된 초록색 장식을 보다 보면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 느낄 수 있다.
“이 화려한 유물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로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불교의 힘이 강해지면서 화려함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봐요.”
신라 시대의 제의를 연구한 김 학예연구과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던 2007년 비단벌레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한 적 있다. “그때 찾아본 바로는 지금까지 비단벌레를 사용한 유물이 나온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특히 비단벌레 유물 중에서도 김 학예연구과장이 최고로 치는 건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말안장 뒷가리개 장식이다. 안타깝게도 이 유물은 글리세린 용액 속에 잠들어 있어 보기 어렵다. 마땅한 보존 처리법이 없기 때문이다.
“신라인들의 유물은 금속은 물론 나무, 곤충 껍데기처럼 다양한 소재를 합쳐서 만들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소재는 각자 보존 처리 방법도 다르죠.”
이런 유물을 비단벌레 껍데기를 감싼 금속 소재에 초점을 맞춰 보존 처리를 하게 되면 비단벌레 고유의 광택이 사라져 버린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인 셈이다.
황남대총 말안장 장식도 보존법을 찾을 때까지 연옥 같은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 있을 예정이다.
“각자의 소재를 살리면서 보존 처리를 하는 방법은 아직도 안 나왔어요. 저희도 머리를 싸매면서 연구 중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장식과 발걸이 복원품. 진품은 보존 문제로 글리세린 용액 속에 보관돼 있다(아래).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 옛 신라 땅에서 발견한 비단벌레, 복원을 향해
따라서 지금 대중에게 알려진 화려한 비단벌레 장식품은 대부분 현대의 장인들이 당시 기술을 활용해 새롭게 만든 복원품이다. 이런 복원품조차 국내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 비단벌레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라 유물 복원품에도 해외에서 들여온 비단벌레가 쓰였다. 정 연구사는 “쪽샘 44호분에서 나온 말다래 유물을 복원하기 위해서 인도네시아에서 비단벌레를 구해 왔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기증한 비단벌레의 날개를 쓰기도 했다.



비단벌레. 숲속의작은친구들 제공


“비단벌레가 전국에서 발견되긴 하지만 그 서식지가 조각조각 나눠져 있어요. 특정 종류의 고목에서만 살기 때문에 대개 오랫동안 숲을 잘 가꿔온 사찰 주변에서 찾을 수 있죠.”
오후 6시 울산 사무실에서 만난 이용화 숲속의작은친구들 대표가 설명했다. 숲속의작은친구들은 곤충 사육을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6월 19일 경남 밀양의 표충사에서 비단벌레 증식과 방사를 진행했다.
“이전에는 전라도 지역에서만 비단벌레가 발견됐어요. 신라 권역에서 비단벌레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유물에 쓰인 비단벌레는 바깥에서 수입해 온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죠. 그러다 2017년에 경남 밀양에서 처음으로 비단벌레가 발견된 거예요. 옛 신라 땅에도 비단벌레가 살았다는 중요한 증거였죠.”
소식을 들은 이후 이 대표의 목표는 비단벌레 복원과 증식이 됐다. “신라 유물을 복원한다면 신라 땅에서 자라는 비단벌레로 복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국가유산청을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2024년 경남 밀양 표충사에서 비단벌레 유충을 확보해 증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전에 여러 번 시도된 적이 있긴 하지만 비단벌레 증식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비단벌레의 생활사에 관한 연구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생육 조건에 관한 데이터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비단벌레가 사는 외부 환경 조건을 최대한 구현하려고 했죠.”
다시 말해 작업하기 쾌적한 실내 환경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평범한 한국의 여름 숲을 재현하려면 30°C가 넘는 고온에 60~70% 정도의 습도 조건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비지땀깨나 흘렸죠.”



2025년 6월 경남 밀양 표충사에서 열린 비단벌레 방사 행사에서 표충사 주지가 비단벌레를 숲에 풀어주고 있다. 숲속의작은친구들 제공


다행히도 노력은 성공을 거뒀다. 1년 만에 10마리 비단벌레가 태어났고 이번 여름 6개체를 풀어줄 수 있었다. 표충사 주지까지 나와 비단벌레들의 새 출발을 기원했다. 신라 시대 권역에서 발견된 비단벌레를 처음으로 방사한 것이라 의미가 깊다고 이 대표는 설명한다.
“생태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 가치도 동시에 가지는 거죠.”
● 멸종, 자연적 단절과 동시에 문화적 단절
비단벌레는 한 생물이 사라졌을 때 인류가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단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멸종은 자연적인 단절과 동시에 문화적인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에 서식하는 비단벌레가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앞으로 신라 시대 비단벌레 장식의 진짜 색을 평생 동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유물이 아닌 살아 있는 비단벌레 또한 보고 싶어졌다. 단지 장신구에 흔적으로 남은 비단벌레가 아닌 신라인들의 숲 높은 곳을 날아다녔을 비단벌레. 이를 위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 중이다.
“멸종위기종을 키우려면 해야 하는 일이 일반 곤충보다 말도 안 되게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손해예요.”
비단벌레 증식은 쉽지 않다. 돈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멸종위기종 증식을 관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좋아하던 왕사슴벌레가 서식하던 숲이 개발로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보고 회사를 세워야겠다 결심했어요. 이 아름다운 곤충을 다음 세대가 볼 수 있도록 하려면 뭐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많은 사람들이 비단벌레 같은 멸종위기 곤충을 더 많이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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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